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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또깡 작성일21-04-28 09:26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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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뉴스 김효진]SG워너비 이석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17일 MBC '놀면 뭐하니'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이석훈의 '내 여자라니까' MSG워너비 블라인드 오디션 풀영상이 게재됐다.



해당 영상은 27일 기준 조회수 132만 뷰를 돌파하며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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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뜨겁다.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연하 여자친구가 이거 불러달라니까 누나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었냐면서 엄청 잘 불러주는 오빠 같음", "나 이석훈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MSG워너비에 합류시킵시다", "이석훈 유죄 1. 유부남이면서 자꾸 신경 쓰이게 함 2. 본인은 미모의 연하 발레리나 분과 결혼했으면서 누난 내 여자라니까 같은 노래 불러서 사람 마음 싱숭생숭하게 함 3. 그마저도 나는 누나가 아님", "내가 또 눈치 없이 늦게 태어났지", "오늘도 공급 없는 수요만 넘쳐나는데... 이석훈 레알 천년의 이상형", "여자라면 한 번쯤 다 가슴속에 이석훈 묻어봤잖아요. 나만 지금 유부남한테 설레고 있는 거 아니잖아요", "이석훈 결혼했으면서 사람 마음을 흔드네 진짜 미치게 한다" 등의 센스 있는 댓글을 남겼다.



1984년생인 이석훈의 나이는 38세로, 2016년 1월 미스코리아 출신 발레리나 최선아와 결혼해 2018년 8월 아들 주원 군을 얻었다.



한편 이석훈은 26~28일, 5월 1~2일 총 5일간 MBC FM4U '전효성의 꿈꾸는 라디오' 스페셜 DJ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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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석훈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페르젠 역으로 캐스팅돼 기대를 높이고 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는 7월 13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다.

김효진 : reporter@topstarnews.co.kr / 취재 및 보도 Reporter@TopSta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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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SEN DB
[OSEN=조형래 기자]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꿈의 무대’ 데뷔전을 치른 양현종(33)의 과거 메이저리거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한때 메이저리그에서도 족적을 남겼고 양현종의 커리어 초창기 시절 KIA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했던 故 호세 리마와의 인연이 화제로 떠올랐다.

양현종은 27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에서 열린 ‘2021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 4-7로 뒤진 3회초 2사 2,3루 상황에서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4⅓이닝 동안 66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1피홈런) 무4사구 1탈삼진 2실점 역투를 펼쳤다. KBO리그 무대에서의 성공과 안정을 뒤로하고 도전을 택한 양현종의 감격의 데뷔전이다.

미국 ‘스포팅뉴스’는 지난 2017년, 양현종과 함께 한국에서 뛰었고 메이저리그에서 21승을 거두기도 했던 올스타 출신 투수 호세 리마와의 인연을 조명한 바 있다. 지난해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로 활동하기도 했던 칼럼니스트 김성민 씨는 이날 양현종의 투구를 지켜본 뒤 자신의 SNS에 "이 얘기를 다시 얘기하기에 좋은 시기인 것 같다"며 당시 작성한 기사를 공유했다.

매체는 “양현종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모자에 쓰인 문구를 본다. 골육종으로 운명을 달리한 친구 이두환,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난 한 여성 팬의 이니셜인 CCR, 뇌경색 투병 중인 김동재 전 KIA 수비코치의 이니셜, 그리고 ‘리마 타임’이 적혀져 있다”고 전했다.

매체는 “2008년 양현종과 리마는 보기 드믄 우정을 맺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양현종이 떠올리는 유대감이다. 양현종은 당시 2년차 투수였고 리마는 외국인 선수 중 최고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면서 “양현종과 리마는 서로를 알아가면서 잘 어울렸다. 양현종의 성장통 속에서 리마는 항상 곁에 있었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양현종은 당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리마는 굉장히 활동적이고 재밌고 야구를 즐기는 선수였다. 나와 같은 생각들을 공유했다. 결과와 관계없이 즐겁게 야구를 하는 것이다. 그에게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다”면서 “나는 당시 겨우 20살이었고 같은 나이대의 선수가 팀에 없었다. 단지 어린 아이였는데 리마는 나를 ‘아들’로 부르면서 잘 돌봐줬다”고 당시 인연을 설명했다.

리마가 한국 무대 첫 승을 거뒀을 때 양현종의 모자를 쓰고 던지기도 한 일화도 소개됐다. 하지만 리마는 14경기 3승6패 1홀드 평균자책점 4.89의 성적에 머물며 시즌 중반 퇴출 당했다. 양현종은 “리마 타임이 적힌 목걸이를 선물로 주려고 주문했는데 갑작스럽게 작별인사 없이 떠났다. 정말 허전하고 그 목걸이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리마와 이후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둘은 재회하지 못했다. 리마가 201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 리마가 세상을 떠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날 양현종은 데뷔 첫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당시 양현종은 “리마가 가장 생각난다. 나를 많이 도와줬다”면서 리마를 추모하기도 했다.파워사다리

매체는 “양현종은 리마를 포함해 모자 챙에 쓰여진 이들에게 나를 잘 돌봐달라고 기도를 한다. 양현종은 이제 리마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 투수로 성장했다”고 정리했다.

그리고 양현종은 이제 KBO리그를 넘어서 메이저리그 무대까지 밟았다. 리마는 이런 '아들'을 지켜보며 더 뿌듯해하고 있지 않을까. /jhrae@osen.co.kr
주시은 아나운서 / 사진=SBS 김영철의 파워FM
주시은 아나운서 / 사진=SBS 김영철의 파워FM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주시은 아나운서가 월급에 대해 밝혔다.

28일 방송된 SBS 파워FM '김영철의 파워FM'(이하 '철파엠')의 '직장인 탐구 생활' 코너에는 SBS 주시은 아나운서가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주시은 아나운서는 직장인 트렌드로 '13년'의 기간을 소개했다. 주시은 아나운서는 "직장인에게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을 상징하는 500만 원을 받는 기간이 13년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고 밝혔다.

DJ 김영철은 "주시은 아나운서도 월급 나오는 날 기다리지 않냐"고 질문했고, 주시은 아나운서는 "어떤 달은 기다리고 또 어떤 달은 '언제 들어왔지?' 할 때도 있다"고 답했다.동행복권파워볼

이어 "'언제 들어왔지?' 할 때가 기분은 좀 더 좋다. 잊고 있다가 찍혔을 때가 좋더라"고 덧붙였다.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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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겹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 국민들에게 밤하늘의 작은 별빛이 되고 싶다.”(2006년 추기경 서임 후 미사 강론에서)

‘혜화동 할아버지’가 하늘의 작은 별로 떠났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 - 2013년 3월 19일 바티칸에서 교황 즉위 미사가 끝난 직후 정진석(왼쪽)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처음 만나고 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 - 2013년 3월 19일 바티칸에서 교황 즉위 미사가 끝난 직후 정진석(왼쪽)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처음 만나고 있다.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조용한 학자 추기경

27일 선종(善終)한 정진석 추기경은 평소 ‘작은 별빛’을 이야기했다. “왜 ‘큰 위안’ ‘큰 별빛’이 아니고 하필 작은 위안, 작은 별빛이냐”는 질문엔 “송구스러워서”라고 답했다.

정 추기경은 ‘조용한 추기경’이었다. 생활은 검소했다. 수십년 사용한 낡은 가죽가방을 썼고, 이면지를 활용했으며, 웬만한 무더위가 아니면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틀지 않았고, 식사는 거의 구내식당에서 했다. 사제가 되면서 ‘나를 위해서는 최대한 배려하지 말자’고 한 다짐을 지킨 것.

또한 ‘학자 추기경’이었다. 그는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만 39세에 청주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지 않았다면 학자의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그는 1961년 사제품을 받으며 친구와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켜 60권 가까운 저서·번역서를 냈다. ’20세기의 영성가'로 손꼽히는 토머스 머튼(1915~1968)의 대표작 ‘칠층산’을 최초로 국내에 번역·소개한 것도 정 추기경이었다. 지난 연말엔 ‘교회법 해설’ 개정판(전 6권)을 펴냈다.

어린시절 - 1942년 12월 노기남(맨 오른쪽) 대주교 서품식에 복사로 참여한 정진석 어린이(왼쪽 앞줄). /서울대교구

어린시절 - 1942년 12월 노기남(맨 오른쪽) 대주교 서품식에 복사로 참여한 정진석 어린이(왼쪽 앞줄). /서울대교구
◇발명가 꿈꾸던 소년, 마음 고치는 의사로

1931년 서울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발명가’를 꿈꿨다.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던 나라와 국민을 돕겠다는 꿈이었다.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던 그가 사제의 길로 진로를 바꾼 것은 6·25전쟁의 참상을 체험한 것이 계기였다. 발명가가 돼 세계 최빈국이던 한국의 경제발전을 돕고자 했던 그는 세계적 발명품은 언제든 생명을 해치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목격했다. 스스로도 생사의 고비를 숱하게 넘긴 그는 1954년 대신학교(가톨릭대)에 입학해 1961년 사제가 됐다. 1970년엔 만 39세의 나이로 청주교구장에 임명됐다. 당시 최연소 주교였고, 그 이전까지 청주교구는 미국 메리놀회가 교구장을 맡아왔다. 28년간 ‘청주 사람’으로 살아온 그는 1998년 김수환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돼 서울로 돌아왔다. 청주교구장 시절 그는 ‘음성 꽃동네’ 설립을 지원해 한국형 사회복지의 한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할 말은 하는 교구장, 정의구현사제단 공격받기도

일반적인 정치·사회적 문제엔 ‘조용한 추기경’이었지만 신앙의 원칙과 어긋나는 경우엔 목소리를 높였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 등 생명윤리 문제나 북한 문제 등에서 그랬다.

정 추기경은 대주교 시절이던 2005년 ‘배아줄기세포연구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황우석 박사에 대한 국민적 인기가 대단하던 시절이었다. 반대 이유는 배아줄기세포는 인간 배아 파괴를 전제로 한 연구라는 점이었다. 반대에 그치지 않고 그해에 서울대교구 내에 생명위원회를 만들고 ‘생명의신비상’을 제정했다.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 2006년 2월 22일 추기경 서임 발표 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손을 맞잡고 기뻐하는 정진석 추기경(왼쪽)과 김수환 추기경. /이진한 기자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 2006년 2월 22일 추기경 서임 발표 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손을 맞잡고 기뻐하는 정진석 추기경(왼쪽)과 김수환 추기경. /이진한 기자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6·25전쟁 60주년이던 2010년 그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용서의 조건’을 말했다. 그는 “천주교 고해성사에서도 죄의 인정, 잘못했다는 자기반성, 다시는 잘못하지 않겠다는 뉘우침, 공개적 자백 그리고 보상이라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불의한 공격으로 시작된 6·25전쟁에 관한 소신을 밝힌 것이다. 종교인이라 해서 ‘조건 없는 용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2010년 말에는 ‘4대강 사업 구설’을 겪기도 했다. 당시 간담회에서 정 추기경은 “지난 3월 주교단에서는 4대강 사업이 자연파괴와 난개발의 위험이 보인다고 했지, 반대한다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정의구현사제단은 “추기경이 주교단 전체의 명시적이고 구체적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으로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일으킨 것은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집중 공격하기도 했다.

한편 정 추기경은 종교계 재정 투명화에 앞장섰다. 지난 2007년 서울대교구는 전격적으로 재무제표를 주보에 공개했다. 교구 ‘가계부’를 공개한 셈이었다. 이 파장은 전 종교계로 확산해 이제는 종교기관의 재정 공개가 일반화됐다.

◇'혜화동 할아버지'로 보낸 말년

정 추기경은 2012년 서울대교구장 직을 염수정 대주교(현 추기경)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다. 은퇴 후 그의 거처는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주교관. 전임 김수환 추기경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서 정 추기경은 사제가 될 때 스스로 다짐한 대로 집필에만 몰두했다. 기도와 집필, 산책과 어린이 등 예방객을 만나는 것이 일과였다. 대외 활동은 발길을 끊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지막 길은 스스로 준비했다. 이미 2018년 연명치료계획서에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서명했고, 장기 기증과 각막 기증을 서약했다. 입원 후인 지난 2월 25일에는 남은 통장 잔액을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급식시설인 ‘명동밥집’ 등에 써달라고 기증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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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잠실, 지형준 기자] 8회초 2사 만루에서 LG 김대유가 롯데 오윤석을 삼진 처리하며 포효하고 있다. /jpnews@osen.co.kr
[OSEN=잠실, 지형준 기자] 8회초 2사 만루에서 LG 김대유가 롯데 오윤석을 삼진 처리하며 포효하고 있다. /jpnews@osen.co.kr
[OSEN=잠실, 한용섭 기자] LG 투수 김대유(30)는 올 시즌 놀라운 반전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까지 프로 11년 동안 단 4시즌 추격조로 뛴 그는 LG 불펜의 든든한 믿을맨이 됐다.

27일까지 10경기에 등판해 8홀드 평균자책점 0를 이어가고 있다. 홀드 부문 1위다. 9⅓이닝 동안 9탈삼진 1피안타 1볼넷 2사구 무실점으로 투구 내용은 더욱 위력적이다. 불펜 투수의 가치를 따지는 기출루 주자 득점 허용율(IRS)도 '0'다. 7명의 기출루 주자를 한 명도 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좌완 스페셜리스트로서 필승조 핵심 전력이 됐다. 짧은 시간에 급격히 달라진 자신의 처지에 김대유 스스로도 많이 놀라워하고 있다.

김대유는 27일 잠실구장에서 롯데전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 자리에서 류지현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지난해와 달라진 점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경헌호 코치님, 김광삼 코치님들과 변화를 줬다. 좌타자쪽으로 더 크로스 하면서 던지는 훈련을 많이 했다. 놓치고 있던 부분을 코치님이 잡아줬다. 준비를 그렇게 계속해왔고, 결과가 좋아 그 부분이 현재까지 유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정감이 생기는 발 위치를 찾았다. 그러면서 제구력이 안정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투구판의 1루쪽을 밟고서 던지는데 가장 최적의 투구 자세를 찾은 것이다.

기술적인 것 보다는 심리적인 부분도 크다. LG 선수들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류지현 감독은 지난해 11월 사령탑 취임 후 선수들과 많은 소통을 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류 감독은 투구폼과 관련해 선수가 편하게 하도록 했다.

김대유는 “정신적인 것이 큰 것 같다. 감독님의 그런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된다”며 “감독님이 편하게 하라고 밀어주셨고, 나도 자신이 있었다. 시범경기를 하면서 코치님이 할 수 있다고 해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경헌호 코치님이 말하기를 ‘믿고 해라. 우리는 너희를 믿는다. 마운드에서 자신있게 해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다”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김대유는 “현재까지는 운이 너무 좋다. 야구가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건데…. 안 맞고, 점수를 안 줄 수는 없는 스포츠다. 운이 좋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면서 기억에 남는 말을 꺼냈다. 김대유는 “올해 첫 경기 KT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경기 후에 아버지와 통화를 했는데 ‘거기 던지면 홈런 볼이다. 높았다’고 말씀하시더라. 운이 좋았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대유는 3-2로 추격당한 8회 1사 1루에서 등판, 알몬테 상대로 커브를 던져 유격수 땅볼 병살타로 위기를 넘겼다. 프로 데뷔 첫 홀드를 기록했다.

김대유의 아버지는 프로야구 선수로 뛴 김종석씨다. 그는 1987~1993년 롯데에서 투수로 뛰었다. 96경기에서 6승 23패 1홀드 평균자책점 4.65를 기록했다. 김대유는 좌투좌타였던 아버지를 닮았다.

커브는 김대유의 주무기다. 그는 “커브에 점점 자신감이 생긴다. (이전에 제구 잡기가 어려웠다) 내가 던지기 힘든 공이라서 타자들도 치기 힘들거라 생각한다. 결과가 좋게 나와서 자신있게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유는 “첫 번째 목표는 1군 진입이었다. 필승조까지는 생각도 안 했다. 어느 상황이든 상관없이 나가는 투수, 많이 던지고 싶었다”고 시즌을 앞뒀을 때 목표를 말했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시즌을 완주하는 것이 목표다. 시즌 끝까지 풀타임으로 뛰는 것. 최근 이렇게 많이 출장하는 것이 드물었다. 체력에 집중하고 관리를 잘 하려고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홀드 1위다. 그는 “순위표를 안 볼 수가 없더라. 여동생이 가족 단톡방에서 그런 이야기도 하고, 지인들이 한 마디씩 하면서 알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대유는 이날 롯데전에서 4-0으로 앞선 8회 1사 만루 위기에서 등판했다. 오른손 대타 김민수를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치는 직구로 루킹 삼진, 우타자 오윤석을 풀카운트에서 하이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고 포효했다. 실점 위기를 막아내는 완벽한 피칭이었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 후 "가장 중요한 순간 위기에서 김대유가 과감하고 멋진 투구로 잘 막아줬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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